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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에세이 4. 감출 수 없는 4가지(감기, 가난, 사랑, 그리고 프로그래밍 실력)

개발자 에세이 3. 대학교 4학년, 산타는 존재했다. (NHN인턴, 컴공) 개발자 에세이 2. 내가 원했던 연봉 3천의 삶(컴공 졸업을 앞두고) https://brocess.tistory.com/328 개발자 에세이 1. 인생은 내 멋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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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

인턴을 시작하고 1주일 동안 짧게 프로젝트를 진행 한 후 현업에 배치되었다.
약 6주 정도를 해당 부서에서 인턴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인턴 중 한 명과 함께 글로컬개발팀?에 배정받게 되었다.
(2014년도의 일이라 정확한 부서명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해외에서 잘나가는 게임들을 들여와 국내에 맞게 로컬화 시키는 조직이었다)그 당시 해당 팀에서는 ‘포코팡(POCOPANG)’이라는 국민게임 및 다양한 게임들을 로컬화 시켜 개발 운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경험이 없는 인턴들에게 실제 운영되는 서비스 기능개발을 맡길 순 없었는지
둘이서 따로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해보라고 멘토분께서 제안주셨다.

같이 팀에 배정받은 분은 2살 많은 형이자 인턴 동기였다.
경쟁상대이긴 했지만 일단 똘똘 뭉쳐 프로젝트를 잘 완성해야만 했다.그렇게 몇일 간의 아이데이션 후 결정된 프로젝트는 바로
'유전자 알고리즘을 적용한 포코팡 게임 만들기' 였다. 스스로 성장해나가는 유전자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포코팡 게임을 만들어 적용시켜야 했다.

시작도 전이 었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단 포코팡과 같은 게임을 구현해야만 했다. 앞이 막막하긴 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유니티를 활용해 클라이언트 개발을 진행했다.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어떻게 만들었지’라는 생각이 있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궁지에 몰리게 되면 자신의 능력이상의 집중력과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2~3주 차에 어느정도 포코팡 클라이언트 개발을 마친 후 유전자 알고리즘을 이론을 학습하며 동시에 게임이 진행될 수록 스스로 성장해 높은 점수를 얻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게임에 적용해 나갔다.

졸업작품을 진행하며 3~4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긴 프로젝트를 경험해보긴 했지만 이렇게 하루의 모든 시간을 할애하여 개발을 해 본건 이 때가 처음이었다.

원하는 기능을 몇 시간이고 구현하고 있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한탄도 많이 하고 개발자로써의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많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개발에 흥미가 많이 없었고 잘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해서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원하는 만큼 완성도 있게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포기하는건 죽기 보다 싫었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친듯이 개발만 생각하고 하루의 모든 시간을
개발에만 쏟아 부었던 것 같다. 6주라는 시간 동안 형과 나는 한 목표를 향해 주말도 포기한채 열심히 달렸고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다다라을 때는 우리가 애초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완성도 있는 프로젝트를 팀원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

매일을 ‘아 난 왜이렇게 멍청할까’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 하기보단 최선을 다하는 길을 선택했다.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처럼 정말 간절히 원하고 행동하면 그 꿈은 현실이 된다는 걸 증명했던 시간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움직이면 불가능할 것 같던 일도 현실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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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에세이 3. 대학교 4학년, 산타는 존재했다. (NHN인턴, 컴공)

개발자 에세이 2. 내가 원했던 연봉 3천의 삶(컴공 졸업을 앞두고) https://brocess.tistory.com/328 개발자 에세이 1. 인생은 내 멋대로 되지 않는다. (컴공 졸업을 앞두고) 인생은 내 멋대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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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출 수 없는 4가지(감기, 가난, 사랑, 그리고 프로그래밍 실력)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나는 NHN인턴에 합격하여 첫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설레기도 했지만 분명 잘하는 친구들이 많을텐데 그 틈에서

경쟁을 잘 뚫고 최종합격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인턴은 2달 동안 진행되었고 첫 번 째 프로젝트는

4명이서 한 팀을 꾸려 2주 동안 프로젝트 하나를 만들고
그 이후 실제 실무 팀으로 배정 받아 6주 동안 팀내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2주 동안 진행됬던 프로젝트의 팀은
필기테스트와 면접 결과를 통해 편성되었다고 얘기해주셨다.
사실 대학생 때도 팀프로젝트를 매번 해왔었지만
이렇게 부담되는 팀프로젝트는 처음 이였다.
인턴이었기 때문에 팀마다 경쟁도 심했고 그 프로젝트 완료 후
회사 사람들을 대상으로 프리젠테이션 시간도 있었기에 그 부담감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었다.

프로젝트의 주제는 2주 동안 게임을 개발하는 거였는데
주제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자유였던 것 같다.
2014년 1월의 일이라 생생히 기억나진 않지만
다른 팀들은 FPS총게임, 마리오 같은 게임 등을 만들었고
우리팀은 비행기 게임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클라이언트, 서버, DB, 게임 기획까지 많은 걸 4명이서 해야했다.

동일한 필기시험(알고리즘, 자료구조, 네트워크, DB, 손코딩) + 기술면접을 합격한 사람들이었지만
2주 동안 프로젝트를 하며 실제 프로젝트에 들어가니 실력은 금방 들통 났다.

단순 컴퓨터 지식을 잘 알고 있는 것과 알고리즘을 풀 줄 아는 것과는 다르게 실전에서 보여지는 실력은 아예 다른 문제였다.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를 직접 구현해보고 실제 서비스가 될 만큼
심도있게 구현해 봤는지에 대한 경험이 많을 수록
단순 전공 책과 손코딩으로만 열심히 취업을 준비했던 친구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존재감을 드러냈다.

언제나 그렇듯(컴공 팀프로젝트들만 보아도)
정말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1~2명들이 팀을 리드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모든게 평가로 이어지다 보니 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점점 느껴지는 실력차이에 주눅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실력도 천차 만별이였지만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물론 잘하면서 열정까지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프로젝트의 완성도가 어떻든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하고 퇴근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에 반해 리더십을 가지고 자기 부분을 먼저 끝내고 부족한 팀원들을 늦게 까지 도우며 팀의 성공을 이끄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런 리더십을 가지고 있던 팀들이 좋은 결과물을 낸 건 두 말하면 잔소리다.
매일 출근해 각 자 노트북 한대 씩을 가지고 같은 공간에 둘러앉아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매일 매일이 숨막히는 경쟁 아래 타이트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서버와 DB쪽 개발을 주로 맡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이 때 정말 그간의 학교 생활에 대해 후회감이 밀려왔다.

학교 다닐 때 좀 더 코딩에 관심을 가지고 과제 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들을 쌓았다면 하는 큰 후회와 아쉬움이 날 감싸 안았다.

하지만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고 나는 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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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에세이 2. 내가 원했던 연봉 3천의 삶(컴공 졸업을 앞두고)

https://brocess.tistory.com/328 개발자 에세이 1. 인생은 내 멋대로 되지 않는다. (컴공 졸업을 앞두고) 인생은 내 멋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개발자로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2014년 7월 여름이다.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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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산타는 존재했다.


4학년 1학기가 끝나가던 2013년 12월,

(대학교 3학년 때 필리핀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바람에 한 학기 휴학을 하여 한 학기씩 밀리게 되었다)
나는 취업을 위해 열심히 원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눈앞에 기말고사가 놓여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인턴 경험 한 번 없이 취업은 쉽지 않을 것만 같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취업 관련 카페(독취사, 스펙업 등), 취업사이트(사람인, 잡코리아 등)을 밥먹듯이 드나들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고 하였던가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NHN (그당시 네이버, 한게임의 전신)으로부터의 서류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사실 큰 기대 없이 제출했지만 진짜 합격 할 줄은 몰랐다.

왜냐면 나는 개발도 잘하지 못했을 뿐더러 학점도 높지 않았다.
내가 NHN을???
일단 서류 합격을 했지만 필기시험을 합격하여야만 기술면접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교환학생을 다녀오며 전공과목 학점이 많이 부족했던 나는
2013년 한 해 동안 전공과목만 대충 어림잡아 10개 정도 수강하고 있었고

그 해 가을 졸업 여건이였던 정보처리기사까지 딴지 얼마 안된 상태였기에 필기시험은 
충분히 해 볼 만할 것 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말고사 기간이였지만 나는 필기시험 준비에 더 초점을 맞췄다.

드디어 다가온 필기시험 날,

필기시험장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온통 코딩 천재들 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즐비해 있었다.
(컴공을 전공했거나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알거다)

필기시험은 알고리즘(손코딩), DB, 네트워크, 자료구조 등 컴퓨터공학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출제가 이루어졌었다.

위의 전공과목들을 그 해 다 수강 했었던 탓인지 생각보다 술술 풀렸고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합격할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생각보다 정확했다.

일주일 정도 뒤 나는 기술면접 전형을 치루게 되었고
기말고사는 뒷 전으로 한 채 기술면접 준비에 집중했다.

면접은 3:3으로 진행되었고 주로 학교에서 배웠던 과목들의 중심 내용들과 이력서를 기반으로 하는 기술면접이었다.

면접 과정 중 면접자 들끼리 특정 주제로 토론을 하게끔 주제를 던져주고 토론하는 모습도 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얼마나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를 보려고 했던게 아닌가’라는 생각이든다.
(면접 준비과정 부터 인생 첫 면접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말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부분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써보도록 하겠다.)

면접의 결과는 사실 필기시험만큼 자신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후련했다.
‘지인사대천명(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 하늘에 결과를 맡기고 기다린다)’이라고

나는 이제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내 일상 생활로 돌아왔다.

어느 덧 기말고사도 다 끝나고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방학으로 인해

저녁이면 주변 술집들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연말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하루 전으로 다가왔고

나는 어느 때와 같이 기숙사에서 나와 점심을 먹으로 식당을 향하고 있었다.
그 때 울렸던 메일 알림이 아직 생생하다.

본능적으로 그 메일이 면접의 결과라는 것을 알았고 이 메일로 인해 나의 겨울방학은
NHN에서의 인턴 or 계절학기로 부족한 학점 메꾸기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역시나 메일은 NHN로 부터 온 메일이였고 결과는 ’합격’ 이었다.

산타는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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