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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엔지니어로서의 첫 걸음,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고객센터개발팀 -> 광고플랫폼 개발실의 크리에이티브개발팀 으로 조직을 이동하면서 나는 광고 관련 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광고 도메인에 관심이 많아 이동하긴 했지만 실제로 광고 관련 일을 하다보니 광고 사업 자체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특히 우리가 마주하는 광고 대부분이 무작위 광고가 아닌 내 관심사나 관심을 가질 법한 것들을 개인의 비식별화된 아이디를 기반으로 데이터들을 쌓고 추천되어 제공되어 진다는 점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데이터 관련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 데이터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하둡이나 스파크와 같은 경력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나는 주로 웹개발(프론트&서버) 위주로 해왔기 때문에 관력 지식이 없었다.

토머스 에디슨이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라고 했던가, 나는 기반 지식이 부족하긴 했지만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변 상사분들과의 면담이 있을 때면 얘기를 하며 관련 책도 틈틈히 보고 있었다. 그렇게 새 팀에서 1년 정도 일했을 때 쯤 광고 DMP를 운영하고 있던 로그시스템개발팀의 업무가 너무 많아지면서 광고 DMP를 맡을 새로운 팀을 꾸린 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광고플랫폼실 이사님은 관련 데이터 지식이 있는 개발자들을 뽑고자 공고도 올렸었지만 2017년 사실상 하둡과 스파크를 실무에 적용해 사용해본 개발자들이 많지 않았기에 원하는대로 인력을 충원하는게 쉽지 않았고 내부에서 키우자는 결정이 났다.

실제로 관심이 있어하던 걸 알고 계셨던 팀장님께서 날 추천해주셨고 그렇게 나는 데이터 엔지니어로서의 첫 걸음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기회는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온다.

 

 

개발자 에세이 16. 연봉 25% 상승, 회사는 개발자 머리 위에 있다.

연봉 25% 상승, 회사는 우리 머리 위에 있다. 보통 한 회사에서 2~3년 정도 다닌 이후 개발자들은 주로 이직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주요 이유는 아마 연봉 상승을 위해서 이거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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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5% 상승, 회사는 우리 머리 위에 있다.

보통 한 회사에서 2~3년 정도 다닌 이후 개발자들은 주로 이직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주요 이유는 아마 연봉 상승을 위해서 이거나 하고 있는 일에 매너리즘에 빠져서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 이다.
그리고 다른 IT 회사에서도 생짜 신입을 뽑아서 교육시키기보다는 어느 정도 경력이 있고 충분히 1인 분 이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다 보니 경력 3~4년 차 정도가 되었을 때 소위 말하는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시기’가 된다.

이제 나도 3년이 막 지나 4년차를 향해 가고 있던 시점이었고 함께 입사한 동기들과 모이면 ‘이직’이 주요 관심사 일 정도로 ‘이직’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동기들의 가장 큰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이직하며 계약연봉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사실 신입 시절에는 회사입장에서도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기도 했고 신입 때는 제 몫을 하기 힘들다는 생각 때문에 보통 매년 100에서 200정도 올랐었다. 그렇기에 동기들 대부분은 연봉을 올리려면 ‘이직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도 하다.
하지만 전임 연구원이 되고 다음 번 연봉협상 때 나는 무려 계약연봉의 25%가 상승한 연봉계약서를 받게 되었다.
물론 평가에 따라 달랐겠지만 상승 퍼센티지가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이직욕구는 게 눈 감추듯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상 업무도 재밌고 팀원들과의 관계도 좋은 상태에서 연봉까지 높여준다니 더 이상 이직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부정하고 싶지만 회사는 이미 우리 머리 위에 있었다.

3년 동안 공들여 키워 놓은 개발자들을 다른 회사에 뺏길 만큼 회사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당장 눈앞의 연봉상승 보다는 내 실력을 향상시켜 내 입지를 완고히 하는데 더 힘쓰자!
분명 퀀텀 점프를 하는 그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개발자 에세이 15. 진급 아닌 진급이 주는 책임감

진급 아닌 진급이 주는 책임감 2014년 7월 입사 후 어느 덧 시간이 흘러 2017년이 다가왔다. 2017년 3월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모두 ‘전임 연구원’으로 진급하였다. 사실 진급이라고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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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급 아닌 진급이 주는 책임감

2014년 7월 입사 후 어느 덧 시간이 흘러 2017년이 다가왔다.
2017년 3월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모두 ‘전임 연구원’으로 진급하였다.

사실 진급이라고 말하기 애매한게 회사 특성상 3년차가 되기만 하면 별도의 평가 없이 자동으로 ‘전임’이라는 호칭을 달게 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전임 연구원’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꽤나 크게 다가왔다. 사원 시절에는 기초적인 부분을 몰라 헤매거나 시덥지 않은 질문을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자연스레 ‘신입이니까’, ‘사원이니까’ 라는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전임 연구원’이라는 호칭이 주는 느낌은 이제 1인 분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걸 반증하기도 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충분한 교육과정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실무를 뛸 수 있는 위치로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그렇기에 진급은 아니었지만 꽤나 큰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조직에서 전임 연구원으로써 나의 생활은 하루 하루 도전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신입때부터 날 케어해 줬던 선임도 함께 심리적으로 의지하고 지냈던 동기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 2년 반의 시간 동안 많이 성장해있었고 팀에 필요한 일들을 어렵지 않게잘 해결해 나가며 팀원 들과도 좋은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전임 연구원’으로써 ‘선임 연구원’으로 진급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들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었다.회사에서 주는 ‘전임’이라는 호칭은 내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개발자 에세이 14. 버티는 것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

버티는 것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 2014년에 고객센터개발팀에서 신입 개발자로 약 2년 정도를 보낸 후 광고플랫폼으로 부서를 이동하게 되었다. 부서를 이동하게 된 이유에는 크게 2가지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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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대학생 시절 때 만큼 자신있게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곧 있으면 직장 생활도 10년차에 접어 든다.

2014년 7월에 개발자로 취업하여 현재도 여전히 개발자로 직장생활을 계속해오고 있다.

직장인 모두에게는 신입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신입들은 아마 직장 생활 10년 한 선배들을 보며 ‘와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신입사원들에게 처음 회사라는 곳은 힘들고 어려웠던 곳 이었을 것이다.
 
내가 처음 취업을 했던 26섯 여름, 나는 그때도 내가 무척이나 어른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른 다섯인 지금의 나는 내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어른’이라는 사실을
무척이나 받아들이기가 쉽지않다.
 
그만큼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리기도 했고 헤쳐나가야 할 것들의 종류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삶은 나에게 문제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어른으로서’, ‘어른이라면’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는 책임감들은 그만큼 커져만 가고 내가 하는 결정에 대한 책임에 대한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대학생 때만 해도 나는 서른이면 기본적으로 ‘벤츠’정도는 끌고 다닐 것 같았다. 그만큼 제대로 된 현실감각은 없었지만 몸과 머리는 이미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생각하는대로 상상하는대로 될 것 만 같았었다.
 
그렇게 나는 첫 회사에 개발자로 취업을 했고 그 당시 나의 첫 연봉은 3800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달 내 통장에는 270정도가 찍혔었고 매달 40~50만원 정도로 살아왔던 내게 270이라는 금액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상황에 금방 익숙해지고 남이 주는 돈을 받는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9년 정도가 지난 지금 나는 첫 신입 연봉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받고 있지만 나의 삶은 사실 신입 때와 비교해 크게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물가와 집 값을 생각하면 사실상 우리의 대부분은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제대로 된 집 하나 빚 없이 가지면 끝나는 그런 인생의 쳇바퀴 속에 살아가고 있다해도 틀리지 않다.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책임져야할 자녀가 있지도 않은 상태이지만 사회적 혹은 심리적 압박이나 여건들로 인해 숨이 턱턱 차오를 때가 있다.
 
요즘 가끔은 내가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도 많이 들다 보니 어느 덧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데 대한 부담 또한 더 커지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아가야겠지만 가끔은 아무 것도 모르고 좋아하던
‘녹색전차 해모수’ 방영 시간만을 기다리던 초등학교 시절이 간혹 그리운건 비단 나뿐일까,,
 
 
 

[ 개발자 칼럼 ] 나는 단 한번도 ‘뛰어난 개발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단 한번도 ‘뛰어난 개발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IT개발자로 밥벌이를 해온지 벌써 10년차가 되어 가고 있다. 처음 개발자로 일을 시작한 이후 9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나는 ‘뛰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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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것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

2014년에 고객센터개발팀에서 신입 개발자로 약 2년 정도를 보낸 후
광고플랫폼으로 부서를 이동하게 되었다.
부서를 이동하게 된 이유에는 크게 2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계속되는 팀장님과의 갈등이었고

두 번째는 광고도메인지식에 대한 관심이었다.

사실 이유를 2개를 들긴 했지만 실제로 내가
부서를 옮기도록 촉매제 역할을 했던 건 첫 번 째 이유가 훨씬 강했다.
사실상 직장생활을 해본 분들이라면 직장에서 일이 힘든 것 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힘듦이 훨씬 괴롭고 크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신입 초반 때는 사실 이게 나만의 문제인 줄 알았다.

내가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했기에 인격적으로 무시 당하는 말을 들었어도
물론 밉긴했지만
‘내가 더 열심히해서 성장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넘겨왔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신입때에 비해 많이 성장했고
어느 때 보다 퍼포먼스를 많이 냈던 때에도
팀장님과의 갈등은 좁혀 들지 않았고
수 백 번을 고민하다가 면담을 신청해 힘들었던 점들과 상처 받은 부분들에 대해 얘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일시적으로는 해소가 된 것 같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할 만 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에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오래 직장생활을 하지 못할 것 만 같았다.
그래서 사내 전배를 신청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평소 관심이 있었던 광고플랫폼쪽 팀장님께 다짜고짜 메일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만나서 면담같은 면접도 보고 내부적으로 TO가 마침 필요했다고 하시면서 좋게 봐주셨고 그렇게 나는 첫 조직을 이동하게 되었다.

그렇게 팀을 옮기고 나니 이 전 팀에서의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이 결코 나의 문제가 아니였음을 깨닫게 되었고 훨씬 더 일하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뜬금없지만 연애도 비슷한 것 같다.

있는 내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주는 사람과의 연애는 나의 자존감을 올려주지만
반대의 연애는 나의 자존감을 한 없이 떨어트릴 수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두 상황에서 모두 '동일한 나'라는 것이다.
지금 힘들다면 같은 환경에서 버티려고만 하는게 답이 아닐 수 있다.

 

 

개발자 에세이 13. 첫 토이프로젝트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지다.

귀가 닳도록 들었던 ‘토이프로젝트’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지다. 신입 개발자라면 많이들 듣는 얘기가 있을 것이다. 개발 실력 키우고 싶다고? 그럼 ‘개발 블로그’, ‘토이 프로젝트’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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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닳도록 들었던 ‘토이프로젝트’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지다.

신입 개발자라면 많이들 듣는 얘기가 있을 것이다.

개발 실력 키우고 싶다고? 그럼 ‘개발 블로그’, ‘토이 프로젝트’를 한 번 해봐~정말 귀가 닳고 닳도록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처음에는 ‘아니 일하기도 바쁘고 회사에서 몰랐던 내용들 학습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언제 또 개발 블로그 하고 토이프로젝트를 하라는 거야’ 라는 생각이 강했었다.

나는 지금 당장 회사 업무를 잘해내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었다.
하지만 잔소리에도 힘이 있든 무의식중에 나도 개발자라면 ‘토이 프로젝트’는 하나 해봐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토이 프로젝트’는 마음 한 켠의 짐이 된채 3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 덧 나도 내가 맡고 있는 시스템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고
‘나도 무엇인가를 스스로 만들고 운영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뿜뿜 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는 매번 시도하려고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포기하였던 ‘토이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어떤 소재의 토이프로젝트를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당시 한 참 가격이 많이 올라 시끌벅적 했던 비트코인 관련된 프로젝트를 해야 겠다 생각했다. 그 당시 2017~2018년도 비트 코인 거래를 했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한국에서 비트 코인 거래를 하려면 ‘김치 프리미엄’을 참고했어야만 했다.

김치 프리미엄이란 다른 나라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가격에 비해 한국에서만 유독 다른 다라 코인 가격보다 적게는 5% 많게는 20~100%까지 높은 시세에 거래되고 있는 현상을 얘기했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의 비트코인에서 비트코인을 사서 우리나라 거래소로 코인 지갑을 통해 옮겨와 김치 프리미엄 만큼의 차익을 챙겨가는 행위들 또한 만연했었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해외 거래소와 비교해 김치 프리미엄을 알려주는 웹서비스는 코인러들 사이에서 유명하였다.

그래서 검색을 하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웹서비스가 있었고 유저 방문자수가 엄청나다는 것을 웹트래픽을 측정해주는 similar web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이트를 보면서 ‘엇 나도 이정도는 만들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첫 토이프로젝트가 탄생 하게 되었다.


사실 마음먹기 보다 행동하기가 더 쉽지 않지만 너무 마음속에 몇 년 째 짐짝처럼
날 짓누르고 있던 ‘토이프로젝트 하기’라는 압박감을 벗어 던지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는지 생각하고 서비스를 오픈하기까지 약 1달도 안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렇게 탄생했던 토이프로젝트(서비스 명칭 re-mind)로 나는 배너 광고라는 수익도 얻어보고 다양한 사업제한(사실상 불법성 제안들,,,,)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다양한 기능들을 추가하며 나만의 첫 토이프로젝트를 운영해나갔지만
갑작스런 코인 시장의 폭락과 함께 약 1년만에 서비스의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토이프로젝트로 인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이 경험은 훗날 내가 다양한 도전을 하는데 작은 성공의 경험으로써 매번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가장 컸던 건, 항상 날 짓누르고 있던 ‘토이 프로젝트 만들기’라는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지며
내 스스로 ‘나도 진짜 개발자가 되어 가고 있구나’하는 마음을 주었고 좀 더 내가 만들어가는 시스템들과 경험들에 대한 애착을 키워나는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구글에 검색해 보니 그 당시 내 사이트를 홍보해주는 글을 모르시는 분이 감사하게도
Steemit 작성해 주셨었다.
https://steemit.com/coinkorea/@terrykim2479/re-mind-kr

마음의 짐을 벗어나는 길은 행동하는 것 뿐이다.

 

최근 뜨고있는 코프확인사이트 "Re-mind.kr" — Steemit

오늘은 최근 새롭게 뜨고 있는 (개발자가 열일하는) 가상화폐사이트를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Re-mind.kr 인데요.. 비트렉스, 빗파 등 해외 주요거래소들과 비교해, 국내 거래소 코인들과의 프리미

steemit.com

2018년 첫 토이프로젝트 이후 썼던 포스팅
https://brocess.tistory.com/151

 

개발자 에세이 12. 인생사 새옹지마, 개발자에서 기획자로

인생사 새옹지마, 라인 기획자에 지원하다. 어느 덧 개발자로 NHN에 입사한지 1년이 지나고 2년차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많이 성장했고 개발도 나름 재미있게 하고 있었지만 항상 나보다 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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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새옹지마, 라인 기획자에 지원하다.

어느 덧 개발자로 NHN에 입사한지 1년이 지나고 2년차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많이 성장했고 개발도 나름 재미있게 하고 있었지만
항상 나보다 잘하는 동료들을 보며 계속해서 열등감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고객센터개발팀에서 이메일상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고 NHN에서 모든 서비스들이 해당 플랫폼을 통해 CS를 접수 받고 처리하고 있었기에꽤나 규모가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기에 고객센터개발기획팀이 따로 존재하였고 기획팀 분들과도 자주 협업할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팀장님과 기획팀장님이 하셨지만 그 과정을 회의를 통해 어느정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럴 때 마다 드는 생각이 시스템을 잘아는 사람이 기획을 하면 좀 더 심도 있는 기획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기획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회사 내에서 직무를 갑자기 변경하기는 주변 시선도 그렇고 내 스스로도 시선들을 감당해가며 직무 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였다.그래서 외부 채용공고로 눈을 돌리던 중 라인(LINE)에서 비슷한 ‘고객서비스플랫폼 기획자’를 채용하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얼씨구나, 날 위한 공고구나’ 하며 열심히 이력서를 썼던 기억이 난다.

물론 기획을 해 본 유경험자를 원했지만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고객시스템을 직접 개발한 경험을 들여가며 근자감(근본없는 자신감) 넘쳐하며 작성하였다.물론 결과는 ‘서류 탈락’ 이었다. 지금의 내가 생각해봐도 개발 경력도 얼마 안되고 기획 경험도 없던 나를 뽑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 결과에 많이 낙담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가고 있던 개발자의 길을 다시 집중해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친게 아니라 실제 시도는 해봤기에 후련하기도 했고 내 길이 아니라는 합리화?도 하며 생각을 쉽게 접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만약 내가 기획자로 합격을 해서 기획자로의 길을 걸었다면,,?’ 이라는 상상을 간혹해보곤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서류 탈락 했던게 ‘나에게 있어서는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합격했다면, 평생 개발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알지 못 했을 테니.

 

개발자 에세이 11. 너가 지금 운동 할 때냐?

너가 지금 운동 할때냐? 개발자로 일한지 2년 차 때 팀장님이 스~윽 내 뒤에 오셔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보고 있는 듯 하셨다. (소위 말하는 병풍....) 사회초년생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어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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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 한번도 ‘뛰어난 개발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IT개발자로 밥벌이를 해온지 벌써 10년차가 되어 가고 있다.
처음 개발자로 일을 시작한 이후 9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나는 ‘뛰어난 개발자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컴퓨터공학과를 입학하는 순간부터 컴퓨터에 미쳐있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나는 안돼’라고 셀프 세뇌 당했던 것도 한 몫 했으리라 본다.

이런 생각은 학교를 졸업 후 회사에 취업해 주변에 잘하는 동기들을 보며 더 확고해져 나갔다.
나의 그 당시 목표는 ‘주변의 동기들 만큼 만이라도 하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했고 사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날 붙잡았던 두 가지 생각이 지금까지 날 개발자로서의 삶을 살게 해주었다.

첫 번째는, ‘포기 할 때 포기하더라도 개발자로서 인정을 받아 보자’였다.

솔직하게 나는 개발자로서 더 코딩을 잘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본적이 없었고
아무 노력도 해보지 않은 채 포기하는 것은 내 스스로가 용납하기 힘들었다.

두 번째는,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회사에 힘들게 개발자로 취업 했는데 힘들다고 포기하고 퇴사하자니 대안이 없었다.
다시 말해, 내가 무엇을 잘하고 재미있어 하는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 내가 인정을 받을 만큼 한 분야에 시간을 투자해 성과를 얻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두가지 요인으로 인해 나는 감사하게도 개발자로 삶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4년차가 되던 어느 날 부터, 나는 개발자로 하루 하루 살아 갈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신입 시절 목표로 했던 ‘남들만큼은 하는 개발자’가 되고 나니 개발하는 일이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이 목표를 이루고 나서도 나의 목표는 ‘뛰어난 개발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개발자로 일을 하다보니,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는 그렇게 뛰어난 기술과 프로그래밍 실력을 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술과 프로그래밍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만드는데 주요 요소일 순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의 목표가 뭐냐고 묻는 다면 ‘행복한 개발자’로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편리한 서비스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즐기며 살아가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내가 만든 서비스로 인해 사람들이 편리함을 느끼고
그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 시간이
괴롭지 않고 즐거움인 그런 개발자 말이다.

꼭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즐기며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개발자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많은 개발자들이 ‘행복한 개발자’로 살아가길 희망해 본다.

 

 

[ 개발자 칼럼 ] 개발자는 재능의 영역일까?

개발자는 재능의 영역일까? 개발자는 노력보다는 재능의 영역일까? 라는 주제로 내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개발자로 10년 가까이 일을 해오면서 정말 다양한 개발자들을 많이 만나왔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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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지금 운동 할때냐?

개발자로 일한지 2년 차 때 팀장님이 스~윽 내 뒤에 오셔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보고 있는 듯 하셨다. (소위 말하는 병풍....)
사회초년생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어느 정도 조직 문화가 있는 회사에서 팀장님이 내 뒤에 와서 아무말 없이 내 모니터를 들여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머릿속은 온통 하얘지고 등에서는 식은 땀이 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 이다.
나 또한 그냥 최대한 신경이 안쓰이는 척을 하며 일을 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팀장님이 내 책상의 달력을 집어 드셨다.
그 달력에는 내가 퇴근하고 했던 운동 기록 같은게 적혀있었다.

단순하게 월요일은 가슴 운동, 화요일은 등 운동 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음 뭔가 운동도 열심히하네’ 라고 칭찬해 주시려나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팀장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반대의 이야기 였다. 그 말인 즉슨 ‘너가 지금 운동할 때냐?’ 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나는 너무 잘못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며 내 달력을 보고 있는 팀장님을 돌아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내 자신이 좀 바보 같긴 하지만 차라리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던게 다행이기도 한 것 같다.
이미 나에 대해 꼬아서 보고 있는 사람에게 그도 팀장에게 굳이 거기서 저 운동하고 와서 다시 일하는데요,,,잠깐 머리 식히러 가는건데요,,라고 해봐야 이해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더 서로의 감정만 안좋아 졌을 것 같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꼭대기 층에 헬스장이 있었고 회사 사람이면 누구나 퇴근 시간 이후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다가 퇴근 시간 쯤 한 시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땀흘릴 수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그렇게 운동하고 나면 이전에 개발할 때 어떻게 구현해야될지 막막하던 부분들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오히려 업무의 효율도 높아졌었다.

이런 상황에서 팀장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다보니 뭔가 정이 확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당시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옷위로 튀어나온 배를 보며) 운동은 당신이 해야될텐데”

 

 

개발자 에세이 10. 나만 너무 못한다고 느낄 때

나만 너무 부족한 것 같다고 느낄 때 개발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다보니 남들과 비교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 대학생 때도 사실 코딩을 잘한 건 아니였지만 그 때마다 훨씬 코딩을 잘하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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