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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엔지니어로서의 첫 걸음,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고객센터개발팀 -> 광고플랫폼 개발실의 크리에이티브개발팀 으로 조직을 이동하면서 나는 광고 관련 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광고 도메인에 관심이 많아 이동하긴 했지만 실제로 광고 관련 일을 하다보니 광고 사업 자체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특히 우리가 마주하는 광고 대부분이 무작위 광고가 아닌 내 관심사나 관심을 가질 법한 것들을 개인의 비식별화된 아이디를 기반으로 데이터들을 쌓고 추천되어 제공되어 진다는 점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데이터 관련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 데이터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하둡이나 스파크와 같은 경력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나는 주로 웹개발(프론트&서버) 위주로 해왔기 때문에 관력 지식이 없었다.

토머스 에디슨이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라고 했던가, 나는 기반 지식이 부족하긴 했지만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변 상사분들과의 면담이 있을 때면 얘기를 하며 관련 책도 틈틈히 보고 있었다. 그렇게 새 팀에서 1년 정도 일했을 때 쯤 광고 DMP를 운영하고 있던 로그시스템개발팀의 업무가 너무 많아지면서 광고 DMP를 맡을 새로운 팀을 꾸린 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광고플랫폼실 이사님은 관련 데이터 지식이 있는 개발자들을 뽑고자 공고도 올렸었지만 2017년 사실상 하둡과 스파크를 실무에 적용해 사용해본 개발자들이 많지 않았기에 원하는대로 인력을 충원하는게 쉽지 않았고 내부에서 키우자는 결정이 났다.

실제로 관심이 있어하던 걸 알고 계셨던 팀장님께서 날 추천해주셨고 그렇게 나는 데이터 엔지니어로서의 첫 걸음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기회는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온다.

 

 

개발자 에세이 16. 연봉 25% 상승, 회사는 개발자 머리 위에 있다.

연봉 25% 상승, 회사는 우리 머리 위에 있다. 보통 한 회사에서 2~3년 정도 다닌 이후 개발자들은 주로 이직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주요 이유는 아마 연봉 상승을 위해서 이거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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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급 아닌 진급이 주는 책임감

2014년 7월 입사 후 어느 덧 시간이 흘러 2017년이 다가왔다.
2017년 3월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모두 ‘전임 연구원’으로 진급하였다.

사실 진급이라고 말하기 애매한게 회사 특성상 3년차가 되기만 하면 별도의 평가 없이 자동으로 ‘전임’이라는 호칭을 달게 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전임 연구원’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꽤나 크게 다가왔다. 사원 시절에는 기초적인 부분을 몰라 헤매거나 시덥지 않은 질문을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자연스레 ‘신입이니까’, ‘사원이니까’ 라는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전임 연구원’이라는 호칭이 주는 느낌은 이제 1인 분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걸 반증하기도 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충분한 교육과정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실무를 뛸 수 있는 위치로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그렇기에 진급은 아니었지만 꽤나 큰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조직에서 전임 연구원으로써 나의 생활은 하루 하루 도전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신입때부터 날 케어해 줬던 선임도 함께 심리적으로 의지하고 지냈던 동기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 2년 반의 시간 동안 많이 성장해있었고 팀에 필요한 일들을 어렵지 않게잘 해결해 나가며 팀원 들과도 좋은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전임 연구원’으로써 ‘선임 연구원’으로 진급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들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었다.회사에서 주는 ‘전임’이라는 호칭은 내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개발자 에세이 14. 버티는 것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

버티는 것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 2014년에 고객센터개발팀에서 신입 개발자로 약 2년 정도를 보낸 후 광고플랫폼으로 부서를 이동하게 되었다. 부서를 이동하게 된 이유에는 크게 2가지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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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닳도록 들었던 ‘토이프로젝트’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지다.

신입 개발자라면 많이들 듣는 얘기가 있을 것이다.

개발 실력 키우고 싶다고? 그럼 ‘개발 블로그’, ‘토이 프로젝트’를 한 번 해봐~정말 귀가 닳고 닳도록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처음에는 ‘아니 일하기도 바쁘고 회사에서 몰랐던 내용들 학습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언제 또 개발 블로그 하고 토이프로젝트를 하라는 거야’ 라는 생각이 강했었다.

나는 지금 당장 회사 업무를 잘해내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었다.
하지만 잔소리에도 힘이 있든 무의식중에 나도 개발자라면 ‘토이 프로젝트’는 하나 해봐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토이 프로젝트’는 마음 한 켠의 짐이 된채 3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 덧 나도 내가 맡고 있는 시스템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고
‘나도 무엇인가를 스스로 만들고 운영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뿜뿜 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는 매번 시도하려고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포기하였던 ‘토이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어떤 소재의 토이프로젝트를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당시 한 참 가격이 많이 올라 시끌벅적 했던 비트코인 관련된 프로젝트를 해야 겠다 생각했다. 그 당시 2017~2018년도 비트 코인 거래를 했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한국에서 비트 코인 거래를 하려면 ‘김치 프리미엄’을 참고했어야만 했다.

김치 프리미엄이란 다른 나라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가격에 비해 한국에서만 유독 다른 다라 코인 가격보다 적게는 5% 많게는 20~100%까지 높은 시세에 거래되고 있는 현상을 얘기했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의 비트코인에서 비트코인을 사서 우리나라 거래소로 코인 지갑을 통해 옮겨와 김치 프리미엄 만큼의 차익을 챙겨가는 행위들 또한 만연했었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해외 거래소와 비교해 김치 프리미엄을 알려주는 웹서비스는 코인러들 사이에서 유명하였다.

그래서 검색을 하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웹서비스가 있었고 유저 방문자수가 엄청나다는 것을 웹트래픽을 측정해주는 similar web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이트를 보면서 ‘엇 나도 이정도는 만들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첫 토이프로젝트가 탄생 하게 되었다.


사실 마음먹기 보다 행동하기가 더 쉽지 않지만 너무 마음속에 몇 년 째 짐짝처럼
날 짓누르고 있던 ‘토이프로젝트 하기’라는 압박감을 벗어 던지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는지 생각하고 서비스를 오픈하기까지 약 1달도 안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렇게 탄생했던 토이프로젝트(서비스 명칭 re-mind)로 나는 배너 광고라는 수익도 얻어보고 다양한 사업제한(사실상 불법성 제안들,,,,)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다양한 기능들을 추가하며 나만의 첫 토이프로젝트를 운영해나갔지만
갑작스런 코인 시장의 폭락과 함께 약 1년만에 서비스의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토이프로젝트로 인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이 경험은 훗날 내가 다양한 도전을 하는데 작은 성공의 경험으로써 매번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가장 컸던 건, 항상 날 짓누르고 있던 ‘토이 프로젝트 만들기’라는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지며
내 스스로 ‘나도 진짜 개발자가 되어 가고 있구나’하는 마음을 주었고 좀 더 내가 만들어가는 시스템들과 경험들에 대한 애착을 키워나는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구글에 검색해 보니 그 당시 내 사이트를 홍보해주는 글을 모르시는 분이 감사하게도
Steemit 작성해 주셨었다.
https://steemit.com/coinkorea/@terrykim2479/re-mind-kr

마음의 짐을 벗어나는 길은 행동하는 것 뿐이다.

 

최근 뜨고있는 코프확인사이트 "Re-mind.kr" — Steemit

오늘은 최근 새롭게 뜨고 있는 (개발자가 열일하는) 가상화폐사이트를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Re-mind.kr 인데요.. 비트렉스, 빗파 등 해외 주요거래소들과 비교해, 국내 거래소 코인들과의 프리미

steemit.com

2018년 첫 토이프로젝트 이후 썼던 포스팅
https://brocess.tistory.com/151

 

개발자 에세이 12. 인생사 새옹지마, 개발자에서 기획자로

인생사 새옹지마, 라인 기획자에 지원하다. 어느 덧 개발자로 NHN에 입사한지 1년이 지나고 2년차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많이 성장했고 개발도 나름 재미있게 하고 있었지만 항상 나보다 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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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평가, 잔혹할 만큼 냉정한 사회

2015년 7월, 2014년 7월 입사하고 거의 소위 말하는 보너스를 받게 되던 날이다.
보통 일반적인 회사라면 일년에 한 두 번 정도는 평가에 의해 성과금 받게 된다.
회사 전체의 이익이 증가하여 받는 PS와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보통 우리 회사의 경우 상하반기 개인 평가가 끝난 이후 그 평가에 의해 보너스가 지급되었다.
일반적으로 월급 정도 되는 금액정도로 대부분 생각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사실 회사입장에서 신입사원은 돈주고 교육시킨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성과금을 받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한다' 는 기조가 어느정도 깔려있었다.

하지만 사실 회사에 취업해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했던 부분이다.
월급과 별개로 받는 보너스는 뭔가 회사로부터 고생했다고 받는 위로 선물 같은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하나?
무튼 월급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이번이 첫 평가는 아니였다.
사실상 2014년 7월 입사해 하반기가 끝난 후 2015년 1월에 평가를 받긴하였지만
교육기간이 생각보다 3달 정도로 길었기 때문에 팀에 합류해 일을 한지는 몇 달 안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사실상 일년이 지난 딱 이시점의 평가가 제대로 된 첫 평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 평가를 받게 되었고 나의 첫 보너스 금액은 100만원이었다.
사실 큰 기대도 하지 않았고 아직은 기여하는 부분 보다 배워가는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보너스를 받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다른 동기들이 받은 보너스의 금액을 알고 난 이후 였다.
나는 거의 동기들 중 하위에 속하는 금액을 보너스로 받은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였다.

이 때 처음 사회의 잔혹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야 말로 너무 비참했다.
대학생 때 누구는 장학금을 받고 장학금을 받지 못하고의 느낌과는 현저히 달랐다.

물론 전체 동기 (대략 36명) 정도의 금액을 모두 알지는 못했지만
친한 동기 몇 명과만 비교해 봤을 때도 거의 최하위의 금액을 받았다는건 알 수 있었다.

오픈은 하게 되었을 때의 그 수치감과 좌절감은 아직도 이루어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오픈이라도 안했다면 이렇게 까지 큰 좌절감은 느끼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과 함께 이길이 내길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큰 고뇌에 다시 한 번 빠지게 되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내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내가 봤을 때도 다른 동료들에 비해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 
남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더 공부하고 실력을 향상시켜야한다. 게임은 이제 진짜 시작이다’

그 당시는 너무 창피하고 속상했지만 뒤 돌아 보았을 때 진짜 아무 것도 아닌 그저 날 더 성장시켜 주었던 한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https://brocess.tistory.com/335

 

개발자 에세이 5. 불가능은 없다. 개발자 == 포기하지 않는것

개발자 에세이 4. 감출 수 없는 4가지(감기, 가난, 사랑, 그리고 프로그래밍 실력) 개발자 에세이 3. 대학교 4학년, 산타는 존재했다. (NHN인턴, 컴공) 개발자 에세이 2. 내가 원했던 연봉 3천의 삶(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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